사람이 죽고 난 뒤에도 디지털 나는 살아 있다면?
SF 영화의 장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기술은 이미 현실로 접어들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말투, 목소리, 사고방식, 표정, 취향을 자료화하여 **‘디지털 인간’ 또는 ‘AI 아바타’**고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일부 스타트업은 이미 고인의 생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챗봇을 상용화하고 있으며, AI 목소리 재현 기술을 활용해 추모 메시지를 대신 읽어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마주한다.
"사람은 죽었지만, 그 사람처럼 말하고 반응하는 AI가 살아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은 추모일까, 모방일까, 혹은 또 다른 형태의 ‘영생’일까?
이 글에서는 사망 이후에도 활동할 수 있는 AI 아바타 기술의 현재 수준, 실제 활용 사례, 그리고 반드시 생각해야 할 윤리적·법적 논쟁을 정리해 본다.
사망자 기반 AI 아바타 기술은 어디까지 왔는가?
AI 아바타 기술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 중이다.
첫째는 생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대화형 모델이다. 사용자의 음성, 문자 대화, 영상, SNS 포스트, 이메일 등을 학습한 AI가 그 사람처럼 말하고, 반응하고, 대화를 이어간다.
대표 사례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 중인 ‘디지털 인간(Digital Human)’ 프로젝트와 사망자 대화 아바타를 제공한 미국 스타트업 Here After AI, 그리고 국내 일부 스타트업의 ‘AI 유언 서비스’가 있다.
둘째는 외형까지 구현된 3D 아바타 혹은 메타 휴먼 형태다. 생전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인의 얼굴을 그대로 복제하고, 목소리도 딥러닝으로 재현하여 가상현실, 메타버스 공간에서 재등장시키는 형태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2020년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MBC)'에서 사망한 딸을 가상현실로 재현하여 어머니가 다시 만나는 장면이 공개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처럼 기술은 단순히 AI로 고인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디지털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죽은 후에도 SNS 포스트를 자동으로 이어주고, 가족 생일에 맞춰 목소리로 메시지를 보내주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고인의 ‘디지털 재현’은 누구의 권한인가?
AI 아바타가 고인을 흉내 내는 기술은 감동적인 추모로 보일 수 있지만, 윤리적·법적 경계는 매우 불분명하다.
우선, 고인의 초상권과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있다. 생전 동의 없이 만들어진 디지털 아바타는 당사자의 의사를 왜곡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AI가 고인의 말투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명예 훼손에 가까울 수 있다.
또한, 상속과 저작권 문제도 존재한다. AI 아바타가 사망자의 목소리로 책을 낭독하거나 광고에 등장한다면, 이 수익은 누구의 것이며, 법적으로 그 저작권은 누구에게 귀속될까?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AI 아바타와 관련한 **디지털 정체성 권리(Digital Identity Rights)**에 대해 명확한 법률을 갖고 있지 않으며, 가족이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만들 수 있는 것도, 반대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닌 법적 공백 상태다.
특히, 생전에 '나는 죽은 후 AI로 재현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던 고인의 의사와, 가족의 추모 욕구가 충돌할 경우 누가 우선일까?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 사회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사전 동의 제도, 법적 기준 마련, 플랫폼 윤리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기술을 활용하되, 윤리를 앞세운 준비가 필요하다
AI 아바타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개인과 가족은 이를 ‘디지털 유산’ 차원에서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기술을 막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망한 뒤에도 AI로 나를 재현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를 분명히 밝혀두는 것이 중요하다.
생전에 해야 할 윤리적 체크포인트
디지털 아바타 생성 동의서 작성
내가 죽은 뒤, AI로 나를 복제하거나 재현하는 것을 허용하는지 여부를 명시
허용 시 조건 설정 가능: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기간 동안
생전 콘텐츠 관리
목소리, 영상, 글 등 AI 학습에 사용될 수 있는 데이터를 어떤 식으로 저장하고,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결정
가족 또는 신탁 서비스에 콘텐츠 사용 권한을 위임하는 것도 한 방법
AI 재현의 범위 제한
단순 추모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인지
광고, 콘텐츠, 상업 활동에 사용을 금지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정
법적 문서에 반영
디지털 유언장, 일반 유언장, 혹은 신탁계약서에 AI 아바타 재현 여부를 포함
특정 기업이나 플랫폼을 지정하여 위탁 운영 조건 명시 가능
가족 간 소통
내가 AI로 존재하는 것이 남겨질 가족에게 위로가 될지, 불편함이 될지를 사전에 충분히 이야기하고 조율
이러한 준비는 단순히 기술적 조치가 아니라, 삶에 대한 책임 있는 마무리의 표현이자, 남겨질 이들을 위한 배려다.
죽음 이후의 AI, 인간의 기억인가 기술의 환영인가?
죽음 이후에도 활동하는 AI 아바타는 단순히 감정적인 위안을 넘어, 기술과 인간 정체성 사이의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가 ‘나처럼 말하고, 반응하고, 기억하는 존재’로 남아 있다는 것은 감동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AI는 나인가, 아니면 나의 흉내에 불과한가?
이 질문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기술은 계속 진화할 것이다. 앞으로는 디지털 분신이 단순한 모방을 넘어서,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나’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반드시 기술을 사용하는 이유와 그 한계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죽음은 끝일 수도 있고, 시작일 수도 있다.
AI 아바타는 그사이 어딘가에서 살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인간의 기억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기술의 환영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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